다재다능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주술을 통해 기척을 숨긴 뒤, 삼엄한 경비를 뚫고 진입.

플라워가 아무리 기세가 꺾였다지만, 세력의 명운이 달린 비밀이 있는 요새다. 단 한 사람의 힘으로 돌파하는 일은 보통이 아니었다.

황야를 건너 삼엄한 경비 지대를 지나, 끝내 거대한 요새를 목전에 두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보안을 뚫는 것은 마법에 통달한 알바나 위키가 아니면 꿈도 못 꿀 일.

솔직히 감탄했다.

-저벅, 저벅.

멀리서 걸어온 플라워의 경비가 우리를 지나쳐 간다.

무작정 걷고 있는데도 이곳을 확인하지 않는다. 아무 기척도 느끼지 못하는 꼴에 감탄사가 기어나왔다.

“이제 알겠지?”

오오.

목소리를 듣고 뒤돌아 본 반야가 팔짱을 끼고 냉랭한 얼굴로 입꼬리를 올린다.

머릿속으로 이 과정을 몇 번이나 그린 듯. 몹시 자연스러운 자뻑이었다.

“잘 알겠다.”

“흥. 당연하지.”

“네가 감기를 달고 다니는 이유를 말이지.”

“뭐? 주술사는 감기에 걸리지 않아.”

따지는 반야는 둘째로, 그녀가 구사하는 기묘한 힘에는 개인적인 흥미가 동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보안을 뚫으려면. 경비 지대를 넘어올 적부터 신경 써야 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열화상, 기류 탐지, 미세파동을 통해 물리적인 접근을 막고.

마법의 차단, 좌표 조작, 마력의 흐름으로 생물을 잡아내는 마법적인 대책까지…. 그야말로 무결함에 만약까지 가정한 완벽한 보안일 것이었다.

물리적인 방향과 마법적인 방향을, 기도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얼이 빠지는 현상이었다.

내 힘으로도 불가능.

그래서 직접 돌파하고자 했던 것인데. 생각보다 일처리가 너무 깔끔하다.

‘여왕 멜리아, 그 치밀한 년이 믿고 맡긴 이유가 있네.’

전투력은 모자라고, 약간 머리도 이상한데 능력은 썩 좋다.

내가 없는 걸 가지고 있다는 점이 확실히 탐이 났다.

-저벅.

원리를 알 수 없는 수단으로 요새의 외벽까지 도달하니. 모래 먼지에 가려져 볼 수 없었던 진회색의 돔이 눈에 들어왔다.

외부의 감시탑을 제외하곤, 물자를 옮기는 가벼운 철로밖에 깔려있지 않는 요새.

의식주는 안에서 해결하도록 장치가 되어있는지.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깔아야 할 산업 기반이 전무했다.

입구는 열여섯의 정예들이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서 있었는데. 입구는 마력 차단기를 연달아 덧대어 놓은 것에 더불어, 출입자의 인증이 되지 않으면 접촉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위협적인 마력파가 문을 지키고 있었다.

레이저에 몸을 들이미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없다. 나라면 버틸 수 있겠지만, 위장은 들키게 될 거고 흑단이나 반야는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나는 즉시 반야에게 물었다.

“이제 어쩔 생각이지?”

“…….”

출입구의 중첩된 보안 시스템에 당황한 반야가 슬그머니 내 시선을 피했다.

“설마, 여기까지 도달하면 무작정 해결이 될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고.”

“…아니야.”

계획이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 계획이 나와 흑단까지 요새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는 계획인가에 대해서는 고민을 좀 해보아야 알 것이었다.

-저벅.

반야는 눈치를 보며 한 발씩 요새의 외곽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흑단과 가볍게 눈을 맞추고, 녀석의 씰룩이는 뒷꽁무니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밝은 갈색 톤의 피부가 눈 앞에서 씰룩씰룩.

슬슬 성욕의 척도가 살살 올라오는데, 이성으로 붙잡지 못할 수준까지 들락거리고 있다.

‘저걸 그냥. 뒤에서 확, 보지를 움켜쥐고 개처럼 박아대면….’

【 해버려. 】

‘…!’

인자의 목소리에 심장이 쿵- 뛰며 오금이 저려왔다.

하마터면 내 뇌와 좆대가리가 또 말썽을 피울뻔했다.

【 치 】

왕관과 인자는 한 패.

이 연놈들은 내 성욕을 자기 복주머니 다루듯 해서 문제다.

적어도 흑단이와 함께 있을 땐 자중하자.

심호흡을 해 마음을 가라앉히니, 어느덧 목표 지점에 도착한 반야가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

슬그머니 손을 뻗어 개구멍을 가리키는 반야.

나는 의심하며 되물었다.

“거기가 왜.”

“…여기로, 들어갈 수도 있다고.”

자신이 없는지 목소리가 살짝 낮아지는 반야.

나는 내 몸이 절반도 들어가지 못할 개구멍을 빤히 바라보았다.

“여기로, 내가?”

흑단이라면 충분하다.

반야라면 어깨와 엉덩이가 끼긴 하겠지만 가능할지도 모른다.

애당초 혼자 진입하는 걸 작전으로 짰을테고, 어쩌다 우리와 합류하여 행동했으니 계획에 어긋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음.’

요새에 스타베팅 구멍이 놓인 이유.

환풍구의 역할도 있지만, 살짝 달랐다.

오수와 약물은 지하 방류로 내보내고, 형질이 뒤집힌 마력은 공기로 내보내는 것이 효율적.

게이트가 열리며 토지에 쌓인 마력을 인간이 활용할 수 있게 전환하고. 잔여물을 압축해 구멍으로 내보낸다.

즉, 인간에게 필요없는 형질의 마력을 버리는 구멍인 셈이었다.